1.주변 상황
1900년대초 동북아시아에는 중국 및 주변국이 제국주의 열강에 의해 분할 점령, 조차등의 형태로 홍콩 구룡반도(영국), 산동반도(독일), 연해주(소련)등이 각국의 이권 대상이 되었다. 1895년 청일전쟁 패전후 요동반도와 타이완 등을 할양 받은 일본제국은 3국간섭의 결과 힘의 열세로 인하여 요동반도를 중국에 반환하였다. 이에 러시아는 여순지역에 군대를 배치하고 극동함대를 대련항구에 배치하였으며 시베리아지역에서 하얼빈을 경유하여 블라디보스톡으로 향하는 동청철도의 이권을 확보하였다. 러시아는 만주 지역에 그치치 않고 조선의 갑신정변 주역인 김옥균등 친일세력과 흥선대원군의 배경인 청나라 군벌에 대항하여 아관파천이후 고종 등 주변 친러외척세력과 손잡고 압록강 주변의 산림채벌권을 획득하는 등 한반도 지역까지 영향력을 행사하여 일본과 긴장 관계가 높아졌다.
2.전쟁 직전의 러일 교섭 실패
일본은 러시아에 한만교환론을 제시하며 한반도는 일본이 만주는 러시아가 지배하는 것으로 교섭을 타진하였다. 러시아는 한반도 39도선을 기준으로 완충지대 설정등을 주장하여 일본과 교섭보다는 세계3위 군사력을 바탕으로 하는 힘의 논리로 일관하며 한반도진출의 야심을 감추지 않았다. 러시아는 대한제국의 친러파와 연결하여 한반도를 영향력 안에 두고자 했으며 인천 제물포항에 군함을 정박시키는 등 남진과부동항 확보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에 영국은 거문도를 해군 거점으로 하여 러시아 남진을 막는 방안까지 고려하였다.
3.전쟁의 시작
일본 제국 해군은 제물포에 정박한 러시아 함선을 공격하는 것으로 전쟁을 개시하였다. 한국에 한일의정서를 강요하여 전시에 필요한 부지와 물자수송을 확보하기 위한 발판을 확보하고, 인천과 원산항을 이용하여 압록강 방향으로 육군을 북상시켰다. 일본 해군은 여순항에 정박중인 러시아군함을 봉쇄하려고 시도했으나 여순항 방어선에 배치된 포의 역습 등을 우려하여 기뢰등을 설치하며 황해에서 러시아와 교전하였다.
4. 여순항, 203고지의 탈환

일본 육군은 압록강부근에서 러시아 육군을 격파하고 요동반도 진저우등에 만주군사령부를 설치하였다. 여순항을 둘러싼 방어선을 돌파하기 위해 노기마레스키의 휘하의 장병 6만명이 철조망 앞에서 기관총 세례를 받고 전사하였다. 일본은 해안 방어용인 대형 산탄포를 가져와 여순요새를 파괴하고 203고지 등을 점령하여 여순항의 러시아 태평양 해군은 진퇴 양난으로 공격받고 붕괴하였다.
5.봉천대회전

일본은 약30만 대군을 만주에 집결시키고 여순의 노기마레스키 위하의 3군과 합류하여 봉천일대의 벌판에서 러시아의 50만대군과 1차대전 이전에 최대의 일전을 벌이고 있었다. 일본 입장에서는 장기간의 전쟁으로 많은 사상자와 파산에 가까운 국가재정으로 단기간에 만주에서 결전으로 전쟁을 마무리할 필요성이 있었다. 러시아의 쿠로파트킨 사령관은 주력이 있는 하얼빈까지 북으로 유인하여 섬멸하는 작전을 구사하였으나 일본은 보급선등의 문제로 북쪽 방향으로 작전이 확대되는 것을 회피하였다. 다행이 일본은 러시아에서 1903년 유대인 학살에 반감을 가진 유대인 금융자본가인 제이콥헨리 시프와 로스차일드 가문의 도움으로 전비를 조달하여 버티며 일거에 전쟁을 끝낼 수 있는 포위섬멸전을 계획하였다.
일본은 대련 ~ 하얼빈 간의 철도를 중심으로 봉천 북쪽 방향에서 러시아군의 포위를 시도하는 우회 공격을 시도하였다. 이에 러시아 쿠로파스킨 사령관은 보급선 차단을 우려하여 봉천(현재 선양)북쪽의 철령부근까지 후퇴를 명령하여 일본 육군은 현재 선양인 봉천에 쉽게 입성하였다.
6.쓰시마 해전

러시아는 여순의 203고지의 점령과 여순항의 붕괴로 발틱함대를 합류시켜 전세 역전을 시도한다. 그러나 러시아의 남하를 막고자 했던 영국의 방해로 최단거리인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지 못했다. 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을 돌아 프랑스령이었던 마다가스카르 섬에서 연료와 식량 등을 보급받고 영국령이었던 말레이시아에서도 보급을 받지 못한채 블라디보스톡으로 향하는 항로를 택하여 쓰시마 해전에서 일본 해군에게 격파당한다.
7.포츠머스 조약
일본은 더이상 전비와 부채를 감당할 수 없는 재정 파탄에 이르렀고 영국과 미국도 일본국채 매입을 중단하였다. 러시아도 재정난과 여순항 함락이후 피의 일요일사건 등 공산혁명세력의 부상으로 더이상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러시아 육군도 소모적인 형태로 만주에서 밀려나고 있었으며 영일동맹과 쓰시마해전의 패전으로 전쟁을 마무리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결국 미국대통령 루스벨트의 중재로 일본은 한반도의 지배권과 장춘 대련의 남만주 철도이권, 사할린 남부지역의 할양 조건으로 전쟁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